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.
이런 내가, 나 자신을 다 알지도 못하는 내가, 이런 상태로 다시 셜리를 만나도 될까. 마음대로 행복해져도 될까.
- 왜 그러면 안 되는데요?-
여전히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까요. 흐릿한 주제에 복잡하죠. 늘 내가 누구인지,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건,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뜻도 돼요. 이런 내가 누구를 보고 싶어하고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일 같았어요.
한편으로는 대단히 역설적인 얘기로 들리기도 했다. S가 지니고 있는 슬픔에 나도, 다른 어떤 사람도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, S를 또렷한 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.
그건 전혀 이기적인 일이 아니에요.
엄마에게 3분 14초짜리 곡을 들려주려고 아빠도 3분 14초를 똑같이 썼을 거에요.
나에게 카세트테이프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. 시간을 선물하려 할 때에는 먼저 똑같은, 때로는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는 걸 알려주는 도구. 내게 그게 필요하다는 걸 당신은 알았던 거에요.
이 책의 이름이 설희도, 셜리도, S도 아닌 '더 셜리 클럽'인 이유는 클럽 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주게 되는 셜리의 성장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. 울룰루의 셜리 넬슨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-자기 자신, 혹은 S와 같은-이 '사랑하고,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온전한 자신이 된다'라고 했다. 하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꼭 셜리 넬슨이나 S와 같이 여러 문화적 배경에서의 혼란, 출생의 뿌리와 같은 진부한 정체성의 혼란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, 특히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느낀다. 우리 모두는 혼란을 안고 있다. 그 어떠한 혼돈도 없이 고요함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. 평생 함께해야 하는 혼란 속에서 그 혼란이 유난히 클 때, 크다 못해 거대해져 내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, '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된다'는 것을 떠올리자.
나의 슬픔은 그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. 오롯이 나의 것이다.
하지만 그 사실로 하여금 나는 온전한 내가 된다. 또렷한 한 사람이 된다. 그리고 그런 나는 사랑을 주고,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.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. 셜리가 S에게, S가 셜리에게 그랬듯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고 완성해 줄 뿐이다.
나는 겁이 많았고, 이타적이었다고 생각한 나의 행동은 이기적이었다. 나는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. 내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많았고, 다른 사람까지 돌아볼 자신이 없었다. 좀 더 합리적인, 서로를 위한다고 했던 선택들은 나의 비겁함과 이기심의 투영이었다. 혼란은 숙명이었으며 상처는 필수불가결했다. 그러한 진리를 회피하고 나는 지금 당장 편한 길만을 택했던 것이다. 나는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.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. 그리고, 그 속에서 나는 내가 된다.
-
여전히 불완전하고 미성숙하고 겁이 많은 나.
이타적이라고 생각한 행동이 이기적인 결과를 낳는 굴레를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까.
내 스스로도,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지키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.
27.11.2021. 덧붙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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